<미국7/260일차> 2012년 6월 27일(수) 워싱턴, 맑음, 세계전쟁의 지휘부, 워싱턴의 두 얼굴(2)
미국에서 가장 큰 인디언박물관 내부 전시물 모습.
미국의 인디언은 콜럼부스의 '신대륙' 발견 당시에만해도 200만~800만명에 달했으나,
지금은 35만명 수준으로 줄어들어 있습니다.
수백만명이 400여년간 죽임을 당하거나 쫓겨나거나 전염병으로 사망한 것입니다.
인디언박물관은 이런 사실을 직시하지 않고 교묘히 회피하고 있습니다.
<워싱턴 여행기 1편에서 계속됩니다>
내셔널 몰 광장에 펼쳐진 퀼트 작품들을 둘러보면서 동쪽 끝에 있는 캐피톨(Capitol)로 향했다. 미국 민주주의와 민의의 전당이며, 미국 정치의 중심이다. 남쪽에는 하원 회의장이, 북쪽에는 상원 회의장이 자리잡고 있는 미국 의회정치의 핵심장부다. 거대하게 지은 석조건물이 위압적이며, 권위를 상징하는 듯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과학 등 모든 분야와 관련된 사안들이 토론대 위에 올라가고, 필요한 법률을 제정함으로써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법을 만드는 입법기관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권력은 의회에서 제정한 법률에 의해서만 합법적인 권력이 부여된다. 이 의회주의의 전통이 역동적인 미국사회의 발전을 가능케 한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미국 민주주의와 민의의 전당인 국회의사당.
상원과 하원이 자리잡고 있고, 미국 국내외의 모든 현안이 논의됩니다.
미국 국회의사당 앞의 조각.
역동적인 조각상이 도전과 모험, 개척을 즐기는 미국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 정치는 강력한 로비집단, 특히 경제력을 앞세워 막대한 자금을 기부하는 금권에 의해 오염되고 있다. 의회는 이러한 경제 권력을 장악한 기업들의 로비장소가 되고 있다. 의회가 민의의 대변자가 아니라 누가 기부를 많이 하느냐에 따라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 및 경제정책과 관련한 의사결정은 물론 심지어 전쟁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이들 금융계와 재계 등 경제계의 입김이 강력히 작용하고 있다. 거대한 캐피톨을 보면서 워싱턴 정가가 진정한 인권과 평화,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민의의 전당이 되길 기대했다. 그것이 언제, 어떻게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의사당의 규모가 생각보다 엄청나게 크고 웅장합니다.
친근감보다는 위압감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의사당 뒤편에는 최고 사법기관인 미국 대법원(US Supreme Court)와 의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이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관심을 끈 것은 의회도서관이었다. 메인 도서관인 토마스 제퍼슨 빌딩(Tomas Jefferson Building)과 존 아담스 빌딩(John Adam’s Building), 제임스 메디슨 메모리얼 빌딩(James Madison Memorial Buiding), 그리고 폴거 세익스피어 도서관(Folger Shakespeare Library)으로 나뉘어져 있는 세계 최고의 도서관이다.
세계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미국 의회도서관.
의회도서관의 중심인 토마스 제퍼슨 빌딩입니다.
도서관이 유럽의 웬만한 성이나 궁궐을 연상시킬 정도로 웅장하게 만들어져 있고, 내부도 호화롭게 장식돼 있다. 건물과 내부 장식의 아름다움 때문에 라이브러리 투어가 별도로 이뤄지고 있지만,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건축물과 장식이 아니라 바로 여기에 소장된 책과 자료들이었다. 미국의 기밀 외교문서를 비롯해 진귀한 자료들이 대거 소장된 곳이다.
국회의사당 쪽에서 바라본 미 의회도서관 토마스 제퍼슨 빌딩.
아직도 학자들의 연구와 조사를 기다리는 원본자료들이 소장된 곳이다. 일반인은 자유롭게 들어가지 못하는 반면 허가된 사람, 특정 연구자 이외에는 접근이 어려워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겉에서만 봐야 했다. 한국의 학자들이나 정치인, 정책담당자들이 적극적으로 접근해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과 관련한 진실을 더 캐내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의회도서관 내부 모습.
거대한 석조건물에 화려한 장식들이 인상적입니다.
국회의사당을 지나 인디언 뮤지엄(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으로 향했다. 그러니까 백악관 아래쪽에서 시작해 내셔널 몰을 시계방향으로 돌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사당에서 인디언박물관으로 가는 곳의 노점.
유럽의 샌드위치에 비견되는 대표적인 미국 음식 핫도그와 음료수를 팝니다.
인디엄 뮤지엄은 미국 최대의 인디언 박물관으로 미국이 인디언의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박물관은 인디언 전통건축물을 연상시키듯이 황토색으로 외관을 만들어 토속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고, 건물도 아주 멋있었다. 여러 개의 박물관 가운데 가장 특색있게 지어진 건물이었다. 박물관에는 인디언의 문화와 그들의 삶, 전통, 의식구조 등을 보여주는 다양한 자료가 풍부하게 전시돼 있었다. 인디언에 대한 미국의 연구 성과를 보여주는 듯했다.
인디언 전통건축 양식을 차용해 디자인한 인디언박물관.
하지만 내가 보고자 한 인디언의 역사는 잘 파악이 안됐다. 인디언을 박제화해 그들의 이색적인 장식과 문화 예술 가면 복장 정신세계 등을 분절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유럽인이 들어와 정복하기 전 수천년 동안 이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민자들에 의해 인디언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단적인 예가 성공한 인디언을 단편적으로 대규모로 소개하는 전시관이 2층의 중앙에 배치돼 있는 것이었다. 눈에 가장 잘 띄는 전시관으로, 스포츠 분야에서 성공한 인디언을 스타로 소개하고 있었다. 이런 단편적인 전시를 통해 오히려 인디언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것 같았다.
인디언도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해야 함을 역설하는 인디언박물관.
인디언의 입장에서 볼 때 미국의 역사는 인류 역사 이래 가장 처절한 인종학살의 역사였다. 1만여년 전 시베리아에서 알래스카를 거쳐 남하해 미국 대륙을 누비던 인디언들은 미국의 서부 개척과 함께 차근차근 살육을 당했다. 콜럼버스가 이곳에 발을 디뎠던 15세기말 미국엔 최소 200만명에서 많게는 800만명의 인디언이 살았다고 한다. 정확한 통계는 아직도 없다. 하지만 지금 인디언 수는 보호구역 주민을 포함해 35만여명에 불과하다. 유럽 이민자들이 본격적인 정복에 나선 이후 400여년 동안 전쟁과 추방, 전염병 등으로 수백만명이 사라진 것이다.
미국 사회에 적응해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고 있는 인디언 후예들을 전시한 모습.
인디언들은 지금도 자신들의 터전을 모두 내주고 사회의 빈곤층을 형성하며 살고 있다. 물론 인디언도, 미국 사회를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 자신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미국은 흑인인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 꿈과 기회의 나라 아닌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다. 사실 오전에 돌아보았던 역사박물관도 “미국은 지금까지 가능성과 기회의 땅이 아닌 적이 없었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 말은 인디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듯했다. 오늘날의 미국이 자신들의 어두운 역사를 직시하기를 외면하면서 현실도 왜곡하고 있는 셈이었다. 인디언을 사라진 역사로 만든,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는 박물관이었다.
박제화된 전통 인디언 문화...
인디언과 인디언 문화의 독창성과 역사적 의미를 보여주기보다는
단편적인 모습만 분절적으로 보여주는 박물관이었습니다.
다시 스미소니언 포크라이프 페스티벌이 열리는 내셔널 몰을 따라 워싱턴 메모리얼, 2차 세계대전 기념비(World War Ⅱ Memorial)를 차례로 걸어서 지났다. 2차 세계대전 기념비 앞의 추모공원에선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 나라이니 추모행사도 끊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추모행사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시대가 더 좋을 것 같았다.
내셔널 몰의 추모공원에서 전쟁 희생자 추모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고, 희생자도 끊이지 않는 국가가 미국이죠.
추모공원엔 항상 조기가 걸려 있고, 저쪽으로 워싱턴 모뉴먼트가 보입니다.
평화와 자유를 위한 방법이 압도적인 힘의 우위에 기반한 전쟁 뿐일까요?
이어 리플렉션 풀(Reflection Pool)을 지나 링컨 기념관(Lincoln Memorial)으로 갔다. 한참 걸어가야 했다. 링컨 기념관 앞의 얕고 큰 호수인 리플렉션 풀은, 거기에 비친 링컨 기념관이나 워싱턴 모뉴먼트가 멋지게 펼쳐지는 곳인데, 마침 풀이 바닥을 드러낸 채 공사 중이어서 그것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워싱턴은, 아니 미국은 워싱턴관 링컨을 가장 중시하고 있었다. 워싱턴은 독립전쟁을 이끈 미국의 최고 영웅이자 초대 대통령이며, 링컨은 남북전쟁을 이끌면서 노예해방을 이루고 미국 민주주의의 기초를 놓은 위대한 정치지도자였다.
링컨 기념관의 웅장한 모습.
링컨기념관에서 바라본 리플렉션 풀과 워싱턴 모뉴먼트.
피플렉션 풀은 공사중으로 물을 빼내 바닥이 드러나 보입니다.
링컨 기념관은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로마의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건축물이다. 36개의 기둥이 지붕을 떠받치고 있고, 그 한 가운데 링컨의 동상이 놓여 있다. 링컨 대통령이 미국 최초의 내전이었던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했다면, 미국은 지금 분단된 상태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링컨은 미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그런 존경할만한 인물은 국민통합과 국민적 에너지 결집에도 큰 역할을 한다. 그런 인물을 영웅으로 만들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잘 이용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기도 했다.
링컨 기념관 앞에 서니 리플렉션 몰과 그 뒤로 워싱턴 모뉴먼트~캐피톨로 이어지는 내셔널 몰이 한눈에 들어왔다. 링컨 기념관 앞의 광장은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다. 마르틴 루터 킹 목사가 ‘나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명연설을 한 곳도 이곳이며, 미국 역사의 주요한 변곡점이 있을 때마다 주요 집회가 열렸던 역사적인 장소다. 해가 기울면서 워싱턴 메모리얼에 석양이 반사됐다. 지금은 관광객들로 붐비지만, 민주주의를 위한 미국인의 땀과 눈물, 함성이 울려 퍼지던 곳이었다. 그 역사적인 장소에 서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가슴이 뛰었다. 아시아에서 출발해 지구를 돌고 돌아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뿌듯함도 몰아쳤다.
링컨기념관 안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동상.
생각보다 엄청 큰 동상입니다.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과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민주주의의 토대를 굳건히 함으로써,
오늘날 미국합중국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링컨 기념관 계단에 앉아 해가 넘어가는 풍경에 빠져들었다. 기념관 앞 광장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링컨기념관과 내셔널 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그러고 보니, 워싱턴의 핵심인 이곳 내셔널 몰에서 평화를 주장하는 곳은 백악관 앞의 코니 할머니 시위현장이 유일했던 것 같다. 자유와 번영, 그 대가인 전쟁, 희생, 추모 등의 언어는 난무했지만, 평화나 인권, 평등 같은 보다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주장하는 곳은 눈에 띄지 않았다. 워싱턴이나 링컨은 위대한 지도자이지만, 미국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어 보였다. 지금 아무리 강한 권력과 경제력을 휘두른다 해도, 미래를 개척하지 못하면 그 번영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해가 서녘으로 기울면서 링컨기념관 앞 광장에 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워싱턴 모뉴먼트가 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계단에서 한참 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숙소로 출발했다. 이번엔 컨스티튜션 애비뉴(Constitution Avenue)를 거쳐 북쪽 행정부 건물들을 지나갔다. 먼저 국무부(Department of State)가 나타났다. 외교 핵심지다. 이어 금융정책의 심장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eral Reserve Board), 국세청(Internal Revenue Service), 법무부(Department of Justice), 국가기록보관소(National Archive) 등이 차례로 나타났다. 백악관을 가운데 두고 주요 정부 건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행정타운인 셈이다. 여기에서 결정되는 정책 하나하나가 미국은 물론 전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그야말로 ‘제국 정부의 심장부’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의 대외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국무부.
대북한 정책도 여기에서 수립되고 실행에 옮겨집니다.
미국 금융정책의 산실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이곳의 결정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을 칩니다.
탈세를 용납하지 않는 미국 국세청.
세금과 관련한 정책을 세계에서 가장 철저하게 수행하는 곳으로,
여기에 걸리면 어느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고 합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중요한 정책관련 문서들을 보관하는 곳으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문서 내용을 공개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합니다.
차이나타운으로 와 뉴욕타임즈에도 소개됐다는 수타면집에서 뜨끈한 국물의 쇠고기 국수를 먹고 숙소로 오자 피로가 몰려왔다. 차이나타운에 온 것이 9시가 넘었으므로 사실상 12시간 동안 워싱턴을 샅샅이 훑고 돌아다닌 셈이다. 같이 투숙해 같은 방에서 묵은 프랑스 청년들은 구시가지인 조지타운(Georgetown)으로 놀러간다고 나가고,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STOP(중지)' 표지판 뒤에 백악관이 보입니다.
백악관이 정당하지 않은 전쟁을 중단하고,
평화와 인권, 환경보호, 정의를 위한 정책을 수행하길 바라는 마음을 대변하는 듯.
제대로 보려면 2~3일은 잡아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한 독을 다 비워야 그게 고추장인지 된장인지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태평양의 바닷물을 다 마셔봐야 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모든 박물관을 다 돌아봐야 미국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핵심을 제대로 돌아봄으로써 미국의 정수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생각으로, 워싱턴, 아니 오늘날 미국의 정신세계를 제대로 이해했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편안히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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