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문재인-안철수, 노무현-정몽준, 김영삼-김대중

천안한화빙그레 2013. 8. 13. 11:12

안철수 대권출마가 중앙일보 보도로 현실화되고 있다.

 

오늘 중앙일보는 야권 중진이라는 소식통으로, 안철수 교수가 대권출마에 대한 마음을 굳혔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의 신빙성을 떠나 중앙일보의 ‘야권 중진 의원’이라는 소식통은 민주당 김효석 의원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 의원은 오늘 아침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했다. 따라서 나는 이 보도를 전형적인 중앙일보식 '치고 빠지기'로 본다. 특히 김효석은 이 인터뷰에서 손석희의 거듭된 질문에도 ‘모른다’고 재차 확인했다.

 

결국 중앙일보의 뉴스 소스가 김효석 의원이라는 근거가 없다. 그럼에도 김효석 의원이 그동안 야권의 안철수 맨토임이 종종 알려졌기에 김효석이 중앙일보의 소스로 의심은 받을 수 있다. 더구나 김 의원이 15일 기자들에게 배포한 '총선패배가 보약이 되기 위해서는 당의 스펙트럼을 넓혀야 한다'는 제목의 글은 매우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기에 더 그렇다.

 

그는 이 글에서 "당내에 있는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 뿐 아니라 밖에 있는 안철수 교수도 함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준비가 안 된 채 안 교수더러 함께 하자고 하는 것이 공정한 일인가 생각해 볼 일"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안철수 교수더러 당에 들어오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며 "문제는 우리 당이 안교수의 정책과 철학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이종걸 의원은 민주당 내 친노가 안철수 교수의 민주당 입당을 막고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오늘 아침 CBS 라디오에서 방송되는 대담프로인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친노그룹이 안철수를 막고 있다"면서 "그것은 그룹의 생존을 위해서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 그룹은 지금 당 내에서 가장 큰 힘과 세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내게는 지난 2002년 정몽준 현상과 1987년 김대중 현상도 보인다.

 

그런데 1987년에는 같이할 수 있는 세력이었음에도 양김 각자 출마로 대선에서 졌고, 2002년에는 다른 세력이었음에도 노무현 정몽준의 단일화로 이겼다. 즉 1987년은 같이할 수 있었으나 같이하지 못했고, 2002년은 같이할 수 없었으나 같이 하려고 했다는 점. 영남 야권의 주류가 힘이 있을 때 만들어 진다는 점이 비슷하다.

 

1

1987년 6월 항쟁이 국민적 승리로 결판나면서 김대중은 오랜 정치연금에서 해제된다. 이후 복권된 김대중은 대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업고 대선 출마를 노린다. 그러나 야당의 주류로 확실하게 당권을 틀어쥐고 있는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은 김대중의 이런 행보를 매우 마뜩찮게 여겼다. 그래서 나온 것이 언론을 통한 김대중의 입당압박이었다.

 

하지만 김대중은 세력 상으로 민주당 입당을 통한 대선후보 경선에서 김영삼을 이길 수 없었다. 때문에 입당의 조건으로 김대중 포함 재야인사들의 집단 입당과 이들이 지구당 위원장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지구당 개편 작업을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영남주류 당권파는 이 요구를 거절하고 ‘무조건적 입당과 당내 경선’만을 주장했다.

 

김대중은 이런 당권파의 요구를 경선이라는 이름을 붙인 김영삼 대통령 후보 선출절차로 봤다. 그리고는 4자필승론이라는 논리로 무장, 독자 노선을 걸었고 대선 끝까지 완주했다.

 

결과가 어땠는지 우리는 경험했다. 김영삼 김대중 각자출마, 노태우 당선....당시 언론은 이 패배를  김대중의 대권 욕심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김대중은 억울하지만 이런 언론의 결론을 받아들이는 국민들의 평가를 겸허히 수용하고 추후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나는 당시를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당시 통일민주당은 상도동과 동교동 합작품이긴 했으나 실제는 7:3으로 김영삼의 상도동 세력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이는 동교동 김대중 직계 정치인들은 김대중과 함께 정치규제 상태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1987년 6.29 선언 이후 실시한 정치규제자 해금에서 동교동 김대중 직계도 김대중과 함께 거의 해금된다. 하지만 이들은 통일민주당원도 아니어서 지구당 위원장이 될 수 없었다. 따라서 당시 통일민주당 안의 동교동계는 상도동계와 원천적으로 세력 게임이 될 수 없었다.

 

특히 지금처럼 국민경선 제도가 아니라 대선후보 경선이나 당권경쟁은 지구당 위원장이 선임한 대의원 투표제였다. 따라서 7:3의 지구당 위원장 분포라면 대선후보 경선은 해보나마나하는 게임이었다. 이 때문에 김대중은 최소한의 경선 조건으로 대등한 지구당 수를 원했다 그러나 김영삼은 들어주지 않았다. 김대중으로선 김영삼의 속셈이 빤히 보이는데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도 언론은 단일화 불발을 김대중 귀책론으로 결론 내렸다.

 

2

2002년 노무현은 세력이 없는 단기필마였음에도 이른바 노풍을 일으키며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했다. 국민경선이 최대 수훈갑. 이 결과로 노무현은 무려 70%대에 이르는 국민지지도를 얻어냈다. 그러나 대선후보로 결정된 뒤 몇가지 실책으로 지지층이 급속히 붕괴되었다. 하여, 이런 상황의 극복을 위한 타개책으로 6월 지방선거에 올인했다.

 

영남지역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공천권을 대선후보 자격으로 행사하면서 영남지역 선거에서 실패하면 대선후보직을 내놓겠다는 선언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선거결과는 우리가 모두 아는 대로 참패였다. 서울시장, 경기지사, 인천시장을 말하는 수도권 3두를 모두 잃었고, 전남북 광주와 제주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참패했다.

 

이 패배는 물론 김대중의 아들들인 3홍시리즈가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를 현 이명박의 측근비리와 실책과 비교한다면 당시 3홍시리즈나 현 이명박 측근비리 및 민간인 불법사찰 건이나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그래도 박근혜는 승리하고 노무현은 실패한 것을 놓고 본다면 노무현의 실패는 대선후보로서 상당한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만약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가 참패했다면 박근혜도 차기 유력 주자가 될 수 없음과 같다. 따라서 당시 노무현 불가론은 나오지 않은 것이 더 이상할 수 있다.

 

때맞춰 국민적 바람을 일으킨 월드컵 열풍과 함께 정몽준은 국민지지도 40%대에 육박하는 유력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민주당은 격랑 속으로 들어갔다. 정몽준 영입을 노골적으로 요구했고 그를 위한 노무현의 후보직 사퇴론이 들끓었다. 하지만 당내외 노무현 지킴이들의 굳건한 지지를 바탕으로 노무현 후보는 후보직을 끝까지 고수했다.

 

그래도 후보단일화를 논하던 ‘후단협’은 ‘국민승리21’을 통해 대선출마를 굳힌 정몽준과의 단일화를 주장하면서 당내 분란을 일으켰다. 김민석의 탈당과 이어진 후단협의 탈당, 격랑 속의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선거를 목전에 두고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에 극적으로 동의했다. 그리고 그 경선에서 이김으로 끝내 대통령이 되었다.

 

3.

4.11총선에서 민주당은 졌다. 문재인 대망론에 불을 지폈던 낙동강 전선에서도 지고 PK전선에서도 졌다. 그래서 문재인 대망론에 희망을 걸었던 민주당 내 친노 당권파들은 다시 격랑의 한 복판에 있다. 이 격랑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이가 안철수다. 이런 와중에 중앙일보는 ‘안철수 대권출마’라는 기사로 민주당을 혼돈으로 몰아넣으려 한다.

 

아니나 다를까, 문재인 손학규 정동영 김두관 등 야권 내 잠룡 그룹을 지지하는 지지그룹은 물론 안철수 지지그룹까지 지금 서로의 유불리를 계산하느라 바쁘다. 하여, 서로 상대 진영을 깍아 내리는 이전투구도 불사한다. 중앙일보의 노림수에 완벽하게 걸려든 것이다.

 

앞서 나는 김영삼-김대중과 노무현-정몽준의 사례를 간략하게 언급했다. 이의  행간을 읽으면 언급한 이유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1987년의 분열은 그 책임 한계로 보면 김영삼과 김대중 양측이 거의 같다. 그러나 실패 후 책임론을 뒤집어 쓴 것은 김대중이다. 2002년, 비록 막판 정몽준의 이탈로 단일화가 깨지긴 했어도 노무현 승리의 원동력을 제공한 것은 정몽준이다. 기존 세력의 이니셔티브를 쥔 쪽이 여론몰이도 표몰이도 용이하다는 증거다.

 

안철수 지지층은 지금 제3세력을 말한다. 김대중의 평민당은 4자필승론을 말했다. 정몽준의 국민승리21도 제3세력을 말했다. 여기에 문국현의 창조한국당도 제3세력을 말했다. 비록 진영은 다르지만 정주영의 국민당도 이인제의 국민신당도 이회창의 자유선진당도 제3세력을 말했다. 또 최근 박세일의 국민생각도 제3세력을 말했다. 그러나 그들 모두 졌다.

 

우리 국민 층에는 분명 범보수 진영도 범진보 진영도 제3세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현상을 깰 힘은 없다. 진보진영이 강고한 것 같으나 최대 150만 표, 범보수 중도 제3세력은 최대 500만 표. 합계 650만 표가 전부다. 유권자 4,100만 명, 투표율 65%라면 총 투표자 수는 2,665만 명 정도다. 이 표를 가지고 보수 진보 제3세력 650만 표를 뺀 뒤 2,000만여 표를 놓고 결국 새누리당과 민주당 후보가 싸우는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안철수의 대권 희망은 이런 계산에서 찾아야 한다. 제3세력은 현상을 깰 힘이 결코 없다.

출처 : `화씨911`이 보는 세상
글쓴이 : 화씨911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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