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최규하 대통령의 작은 기념관 관람

천안한화빙그레 2013. 12. 4. 09:45

 최규하 대통령 작은 기념관 관람

강원도 원주 출신인 최규하 대통령을 관운 좋은 대통령이라고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불운의 대통령이라고도 한다.

국무총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대통령 직무대리에서 제10대

대통령으로 취임 하였고 재임 8개월 만에 단명의 대통령직을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최규하 대통령의 모교인 원주초등학교(구 원주보통학교-제20회 졸업생) 교내에 세워진

최규하 대통령 기념관 “현석관(玄石館)을 찾아 보았다.

최규하 대통령의 호를 딴 현석관은 2010년12월2일에 개관되었으며 27억원을 들여

700㎡의 터에 지상 2층 규모로 건축 되었다.

1층에는 최 대통령의 사료를 보관한 대통령실과 시청각실, 어학체험실이 있고

2층에는 체육관 겸 강당을 가추고 있다.

특히 대통령실에는 최 대통령의 흉상과 친필 휘호 및 편지, 각종 사진, 설명판,

재학 당시의 원주보통학교 모형도 등이 전시 되어 있다.

어학체험실과 시청각실에는 학생들이 대선배이신 최 대통령을 닮아 대통령이 되는

꿈을 심어 주고 외교관으로 성장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어학 교육이

실시 되고 있었다.

현석관은 학생을 위한 기념관이므로 항시 개관을 하지 않는다.

일반인에게는 특별 요청시에 만 관람이 가능하다.

 

 

최규하(崔圭夏) 제 10대 대통령

출생 1919년 7월 16일 ~사망 2006년 10월 22일

출생지 : 강원도 원주시 봉산동 836-2

신체키 178cm, 체중 75kg | A형

현석관 내의 대통령실에는 최규하 대통령의 자료가 전시 되여 있다.

 

 

 

                       정치가, 외교관이며 호는 현석(玄石), 자는 서옥(瑞玉)이다.                       

1931년 원주보통학교 20회 졸업(현 원주초등학교)

1937년 경성 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 졸업(현 경기고등학교)

1941년 일본 도쿄고등사범학교 영문학과를,

1943년 7월 만주 국립대동학원을 졸업하였으며,

1943년 만주 국립대동학원을 졸업한 뒤 광복 때까지 만주국 관리를 지냈다.

1945년 광복 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가 되었으나

1946년 중앙식량행정처 기획과장으로 옮기면서 농림행정에 종사,

1951년 농림부 농지관리국장 서리를 거쳐 외무부 통상국장이 되면서

            외교관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1952년 주일대표부 총영사,

1959년 주일대표부 공사로 승진, 그해 외무부 차관이 되었고,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외교담당 고문이 되었으며,

1964년 말레이시아 대사,

1967년 외무부장관에 발탁되었다.

1971년 대통령 외교담당 특별보좌관에 취임, 

1972년 남북조절위원회 위원이 되어 평양에 다녀왔으며,

1975년 국무총리에 발탁되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대통령 직무대행을 하다가

            제10대 대통령에 당선되였다

1980년 대통령직을  사임하였다.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장과 국정자문회의 의장을 하시다가

2006년 서거하셨다.

 

 

국무총리 재임 중인 1979년 10.26사건을 맞아 대통령권한대행이 되었고,

같은해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12월 12일 신군부 세력이 12·12사태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진압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으로서의

통치권을 행사하지 못하였다.

결국 8월 16일에 사임함으로써 역대 최단기 대통령이 되었다.

이 때문에 그가 이끈 정부는 '과도정부' 또는 '위기관리정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사임 뒤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장, 1981년 4월부터 1988년까지 국정자문회의 의장,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민족사바로찾기국민회의 의장을 지냈다.

2006년 10월 22일 자택에서 노환으로 서거하셨다.

1967년 제22차 유엔총회 수석대표를 비롯하여 30여 회에 이르는 국제회의에 참석하였으며,

 1970년 한국외국어대학으로부터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밖에 서훈으로는 1970년 일등수교훈장, 1971년 수교훈장 광화대장,

1979년 무궁화대훈장, 1980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등 국내훈장과

타이 정부로부터 받은 백상최고훈장 기사대장 등 10여 종의 외국훈장을 받았다.

원주보통학교 6학년 졸업사진-1931년3월

 

1931년(일본. 소화6년) 졸업장

   

경성 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 학생시절(지금의 경기고)

원주시 봉산동 836-2번지의 최규하 대통령이 태어나서 어린시절을 보낸 초가집 생가이다.

 

최규하 대통령이 태어난 생가를 1994년 최대통령이 원주시에 기증하였다.

원주시에서는 이 생가 터에 1997년 원주시립박물관을 건립하면서

태어난 옛집과 비슷한 평면구조로 관리상 편의를 위하여 전통 한옥으로 다시 지었다.

옛 초가집 형태와 똑 같이 "ㄴ"자 형과 "ㄱ" 자 형 두채를 복원하여

전체 형이 "ㅁ"자 형의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건물 구조를 이루고 있다. 

 

 

 

 

  

  

 

 

 

원주의 치악산 정기를 받아 태어나서 항상 태를 묻고 유소년 시절을 보낸

 고향 원주를 잊지 못하는 최규하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한옥으로 복원한 생가 터에

그의 경력을 기록한 유허비(遺墟碑)를 세웠다.

 

원주보통학교 재학중 시절의 당시 학교 모형도

학생들에게 최규하 대통령의 외교관 경력을 소개하여 외교관이 되도록 주지시키고 있다.

 

 

일본 도교의 주일본 한국대표부 참사관 근무시절 가족사진

1953년 주일본 대표부 총영사 시절 홍기여사와 함께

 

1972년 남북조절위원회 대표로 평양 방문

  

1975년12월19일 박정희 대통령으로 부터 국무총리로 임명되었다.

외교 사절단을 접견

1979년10월26일. 갑짝이 서거하신 박정희 대통령의 영전에 분향

1979년12월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여

1979년 12월21일 장춘체육관에서 제10대 대통령 취임하였다.

   

대통령 취임 선서

 

최규하 대통령의 제10대 대통령 취임 기념 우표 발행

기념 봉투

 

대통령 직무 모습

1979년 신군부의 12.12 군사 쿠테타를 주도한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과

노태우 중장 등을 접견하고 있다.

1980년8월. 전두환 당시 국가보위위원장에게 대장 계급장을 달아 주는 최규하 대통령

 

   

전두환 육군 대장의 진급 신고를 받고 악수하는 모습

 

영부인 홍기여사는 19세 되던 1935년에 연하의 최규하 대통령과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었다. 2004년7월20일 최규하 대통령 보다 2년 먼저 타계 하였다.

최 대통령 재임시에 어려운 이웃을 위로하는 홍기여사

대통령 재임시의 연설문집

 

 

1980년8월16일 하야 후에 담배로 심신을 달래는 최규하 대통령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에게 대통령직을 물려 주고

1980년9월1일 제11대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였다.

제15대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이 끝난후 전직 대통령들과 기념사진 촬영.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여 축하 인사.

서교동 사저에서 휴식

2004년8월 서울대학교 병원에 입원중인 최규하 대통령을 박근혜 한나라당 전대표가 문병

 

최규하 대통령은 모교인 원주초등학교를 극진히 사랑하여 많은 휘호와 서신을 보내고

많은 찬조금도 보내주어서 그 고마움을 현석관에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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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입국-“교육을 통하여 나라를 튼튼하게 세운다”

1979년 국무총리 재직시에도 원주초등학교 개교 70주년 기념 휘호를

보내 주어서 (이 휘호는 소실되었음) 이 휘호로 학교에서는 충효탑을 만들어 세웠다.

 

대통령직 사임 후 1986년3월에 모교인 원주초등학교에 두 번째 보내신 휘호이다.

이보다 먼저 1979년 국무총리 재직시에 보내 준 휘호로 충효탑을 건립하였는데

이 휘호가 소실 되었다하여 다시 보내 주신것이다. 

소년이노학난성 일촌광음불가경

“소년은 늙기 쉽고 배움은 이루기 어려우니 일초의 시간인들 가볍게 여기지 말어라.”

(주희의 우성(偶成)시의 한 구절로 학문을 권하는 내용)

이 휘호도 개교 70주년을 기념해서 “교육입국” 휘호와 같이 보내 주신 것이다.

      

원주초등학교는 개교 70주년을 맞아서 최규하 대통령이 보내 주신

“소년이노학난성 일촌광음불가경” 휘호로 두개의 기념 지주탑  세웠다.

유근유공-“오직 부지런한 것만이 성공을 이룰 수 있다.”

대통령 사임 후 1993년10월에 모교인 원주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보낸 휘호  

 

 

 

 

1980년 초여름 대통령 재임시에 영동지방 순시시 고성군 토성면에 있는

관동팔경의 하나인 “청간정”에 들린 다음 한시의 휘호를 주셨다.

이 정자의 이름 "청간정“의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의 휘호이다. 

 

“교육입국”과 “소년이노학난성 일촌광음불가경” 친필 휘호 2점을 보내면서

동봉한 서신과 봉투.

 

1986년2월에 모교 원주초등학교 학생도서 구입비로 50만원의 성금을 내면서 보낸 친필서신

 

1995년12월에 원주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 찬조금으로 500만원을 내면서

보낸 친필 서신과 봉투

 

 

최규하 대통령은 2006년 10월 22일  88세로 서거하였다.

문상 분향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

문상 분향하고 묵념을 올리는 김영삼 전 대통령

문상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

문상 분향하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문상하는 반기문 UN사무총장

2006년 10월 26일 최규하 대통령의 국민장 연결식이 경복궁 앞뜰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등 국내외 인사 2,000여명이 참석하여 거행.

 

 

최규하 대통령 국민장 연결식에 참석한 전직 대통령과 귀빈들.

당시 노무현 대통령 내외의 분향

 

 

 

 

 

 

대전 국립 헌충원 국가원수묘역에 안장

고 최규하 대통령의 100일재 및 묘비, 추모비 제막식을 2007년 1월 29일

국립 대전 헌충원 국가원수 묘역에서 거행하였다.

 

고 최규하 대통령 내외분 분묘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467-5번지에 위치한 최규하 대통령의 주택은

 1970년대에 유행한 박공형(복층 복열형) 도시주택이다.

2008년10월10일 등록문화재 제413호로 지정 되었다.

 

최규하 대통령이 서거 후 후손들이 이 주택을 관리하기 곤란하므로 서울시가 2009년 7월

유족으로부터 이 가옥을 매입했다.

서울시는 2010년 4월 정밀 안전진단을 한 뒤 가옥 외부를 거주 당시의 모습으로 

공사비 2억3400만원을 들여 복원했다.

이 주택은 지하1층 94㎡, 1층 142㎡, 2층 94㎡ 등 총면적 330㎡, 지하 1층 지상 2층의

단독주택으로, 대통령이 외무부 장관 퇴임 후인 1972년 최대통령이 직접 건축하여

1976년 국무총리로 임명돼 삼청동 공관으로 이주할 때까지 3년, 1980년 8월 대통령직

사임 이후부터 2006년 서거할 때까지 26년 등 약 30년을 거주한 곳으로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았던 가제 도구 유품이 그대로 보존되여있다..

이 가옥의 특징은 대통령 내외가 안방, 부엌, 보일러실 등을 갖춰 놓고 매우 빈번하게

사용하던 지하 공간이다.

지하에는 특이하게도 안방, 부엌, 창고, 보일러실 등이 갖춰져 있다. 1층 부엌은 손님용

차와 간단한 음식을 준비하는 장소였고, 지하 부엌은 실제 부엌으로 사용하였다.

영부인이 이곳에서 식사를 준비하면 대통령은 상을 펴놓고 콩자반, 멸치뽁음, 꽁치구이

등을 주로 즐겨 먹었고, 라면을 후식으로는 즐겼다고 전해진다.

서울시는 지하 공간을 대통령 거주 당시 모습으로 재현해 전시하고, 1층의 거실과 부엌,

안방, 영부인방,  2층의 서재, 자녀 방, 거실 등도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가옥 내부에는 당초의 생활 모습 그대로 사용 하였던 유품 수백 점을 다시 진열 하였다.

재봉틀, 연탄화덕등 유물 11점, 임명장이나 액자 등 전시 유물 23점이 지하에 전시되고,

1층 안방 유물 96점, 응접실 유물 93점, 거실 및 부엌 유물 75점, 영부인방 유물 11점,

2층 서재 자녀방 거실 유물 74점 등이 원형 그대로 그 자리에 전시된다.

대통령직 하야 때 페인트칠을 하고, 와병 중 침실 내부를 개조한 것을 제외하고

가옥은 내 외부 모두 건립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 주택은 연탄 보일러 주택으로 외풍이 있으면 전기 난로를 조금씩 켰다고 한다.

최규하 대통령이 연탄 보일러를 고집했던 것은 국무총리 시절인 1978년 제1차 오일쇼크

석탄공사 장성탄광 막장에 들어가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하는 광부들에게

"당신들의 노고를 잊지 않기 위해 평생 연탄을 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 약속을 수년간 지켜오다가 2004년 홍기여사의 사망 후 어쩔수 없이 교체하였다.

구형 21인치 텔레비젼, 구형 스텐드, 앉은 뱅이 책상.

30년 동안 사용한  응접실의 쇼파와 탁자, 책장.

 

골동품 상회에서도 볼수 없는 식탁과 찬장. 옛 농짝도 보인다.

스크랩 하던 오래 된 앉은 뱅이 책상과 옷장.

 

외무부장관시 공관장 회의 훈시문

53년 동안 사용했던 선풍기.

동전 모으기와 연설문 메모.

철지난 달력을 잘라 만든 메모지, 연필 꽂이 등.

홍기여사가 사용했던 그릇과 재봉틀, 지갑 등이 지하실에 보관 되여 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직원들이 유품을 국가기록원으로 운반 하려고 정리하고 있다.

(2010년 5월 3일)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최 전 대통령이 서울 서교동 사저에 보관 중이던 문서 및

사진류와 생전에 사용하던 유품 등 5t 트럭 5대분을 수집·관리하여 

사저가 다시 복원 될 때 까지 보관 하기로 했다.

             국가기록원이 유족으로부터 넘겨받은 유품은 53년간 사용하던 선풍기를 비롯해

      외무부장관 훈시. 앉은뱅이 책상위 기록물. 서랍 속 동전과 친필 메모.   

서재안 서가. 서재안 책상위. 묵은 달력으로 만든 메모지. 친필 기록부 등이다.

  또 1946년부터 1988년까지 외무부 장·차관, 국무총리, 대통령, 국정자문회의 의장 등으로

일하며 남긴 문서, 앨범, 서한, 연설문, 일지, 메모, 스크랩, 책자 등이다.

  수집된 기록물은 문서·사진류 194상자, 선물·유품류 660점, 가구 및 집기류 25점 등으로

대부분 최 대통령 내외가 1973년부터 2006년 서거할 때 까지 거주한 사저에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던 자료다.

  기록물 수집은 2009년 유족인 장남 최윤홍 씨가 대통령기록물 관리 전문기관인

대통령기록관에 위탁 의사를 밝히면서 성사됐다.

대통령 재임시 타고 다녔던 승용차

최규하 대통령 기념사업 본격 추진 전망

아직까지 번듯한 기념관 하나 없는 “최규하 대통령 기념사업”을 원주시에서는

원주시장등 지역인사와 유족 대표, 최 전 대통령 재임 시 장 차관,            

도 출신 장 차관, 국회의원 등 전 현직 저명인사 등 1,000여명으로 구성된

"최규하 대통령 기념사업회"를 설립하여 앞으로 다양한 기념사업을 통해

         강원도 출신 최 전 대통령에 대한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이를 계승 발전 시켜   

원주시민의 자긍심을 높여 나갈 방침이고, 기념관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건립하여 현제 유족으로부터 기증 받아 보관 중인

유품 1,000여점을 일반에 공개 할 예정이다.

 

 

Jong Y. Lee

 

 

 

출처 : 강원도우회
글쓴이 : 이종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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