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빚 줄여주고 일자리 지원하니 신용불량자 회생률 84%로 껑충..캠코의 `행복잡이`
빚 줄여주고 일자리 지원하니… 신용불량자 회생률 84%로 껑충
조선일보 특별취재팀
[펑크 난 사회 안전망 - 빚에 갇힌 서민들]
빚 탈출 성공시킨 일자리 프로젝트… 캠코의 채무자 자활 지원책 '행복잡이'
1636명에게 일자리 알선 - 캠코가 신원 보증 서주고 정규직 고용 기업엔 자금 지원, 취업 알선 못 받은 경우보다 회생률 18%p나 올라가
자활의 근본은 일자리 - 빚 일부 탕감받은 채무자, 일자리 지원받아 빚 갚아나가, "금융지원만으로는 자활 못해 안정된 소득원 마련해줘야"
"어려워도 다들 살잖습니까. 힘내세요."
지난 13일 손모(54)씨는 서울 역삼동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10층 서민금융부 소액대출팀을 찾아온 사람들을 맞느라 바빴다. 서민금융 소액대출 자격 요건이 되는지 묻는 고객들을 하루 20여 명 정도 상담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불과 1년 반 전만 해도 그는 상담을 받으러 캠코를 방문했던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 신세였다. 중견 건설회사에 다니다 10여 년 전 프랜차이즈 분식집을 냈지만, 사업은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다. 안간힘을 쓰고 버텼지만, 4년 전 카드빚 2000만원을 안고 문을 닫아야 했다. 캠코에서 빚의 일부를 탕감받고 월 10만원씩 갚아 나가던 그는 지난 2011년 말 '신용불량자들에게 취업을 알선한다'는 안내문을 보고 신청서를 냈다. 몇 달 뒤 캠코에서 '상담 업무를 맡아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월급 120만원, 출퇴근에 2시간40분이나 걸리는 직장이지만, 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직장이다. "무조건 빚을 깎아 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예전에 내 모습과 겹쳐요. 이제는 정말 정신 차리고 살겠습니다. 빚도 차곡차곡 빨리 갚고 잘살아봐야죠."
14일 전모(49)씨는 지적도와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서울 광희동 주변을 돌았다. 캠코의 주선으로 한 인력파견업체에 취업, 서울시가 발주한 국유지(國有地) 무단 점유 시설물 적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제약업체 영업 사원으로 일하다 독립해 도매상을 차렸지만 2005년 1500만원 카드빚을 지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는 "지난해 5월부터 매달 130만원 정도 월급이 통장에 들어오니 세상에 바라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준 프로그램은 캠코의 신용회복 지원 제도인 '희망모아' 대상자 가운데 일자리까지 알선해 주는 '행복잡(job·일자리)이'다. 행복한 일자리를 잡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자활(自活)의 근본은 일자리'라는 아이디어로 2010년 7월부터 신용불량자 1636명을 취업시켰다.
◇일자리 연결해준 1636명은 자활 가능성 높아
행복잡이 프로그램을 통해 일자리를 갖게 된 사람들은 회생률(탕감 후 남은 빚을 모두 갚았거나, 갚고 있는 사람의 비율)이 84%에 달한다. 지난 2011년 기준으로 752명 가운데 608명이 정상적으로 빚을 갚아 나가고 있었다. 반면 일자리는 알선받지 못한 일반적인 '희망모아' 대상자들의 회생률은 66%(총 63만명 가운데 42만명)에 그친다. 일자리를 알선해 준 경우와 18%포인트나 차이가 난다. 개인워크아웃이나 개인회생 등의 지원 제도를 통해 빚을 상당 부분 탕감해주더라도 일자리를 잡지 못하면 자활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입증하는 숫자다.
전모(49)씨가 14일 서울 광희동 인근 국유지를 돌면서 불법 시설물의 사진을 찍고 있다. 1500만원의 카드 빚을 진 신용불량자였던 그는 작년 5월 캠코의 행복잡이 프로그램을 통해 인력파견업체에 취업했다. 전씨는 “매달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 130만원이 내 인생을 지탱해주는 지팡이”라고 말했다. /성형주 기자
캠코 관계자는 "이들에게 일자리 알선이 필요한 것은 빚의 수렁에 빠진 뒤 사회와 단절돼 정상적인 구직 활동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캠코는 이들의 신원 보증을 서주고, 일자리를 주는 회사에 금전적인 지원도 해준다.
행복잡이 프로그램으로 정규 직원을 채용하는 경우 1년간 고용노동부의 지원금 650만원과 캠코의 자금 270만원을 더한 최대 920만원을 지원해 준다.
◇병원비 등 일시적 고액 지출에 대한 안전장치도 필요
하지만 실패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 2011년부터 '행복잡이'를 통해 기계수리업체에 취직한 임모(54)씨는 작년 5월부터 캠코에 매달 갚아야 할 돈 28만원을 내지 못하고 있다. 월급이 100만원을 조금 넘지만, 식당일을 하던 아내가 당뇨병으로 병원을 드나들고 나서는 28만원이 큰돈이 됐다. 병원비를 빌릴 곳도 없었다. 2500만원 전세보증금과 작은 회사에서 비정규직 사원으로 10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 아들(29)이 있어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받지도 못했다. 임씨는 "월 10만원씩 갚으면 안 되냐고 사정해 봤는데, 규정상 어렵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당장은 빚을 갚기 어려워 자포자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자리 대책과 함께 사회안전망이 보완되어야 신용불량에서 재활한 사람들이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 지원만 가지고 자활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며 "빚더미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안정된 소득 창출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부가 좀 더 적극적인 지원을 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취업자 절반 이상 계약·일용직… 일자리 질 높여야
조선일보 특별취재팀
[펑크 난 사회 안전망 - 빚에 갇힌 서민들] '행복잡이' 프로그램 보완점은
63%가 월급 150만원 미만, 빚 갚고 생활하기에 빠듯… 질병·사고 땐 빚 못갚고 연체
행복잡이 프로그램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우선 일자리의 질(質)이다.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취업에 성공한 1636명 중 절반 이상이 계약직이거나 일용직이었다. 사무 관리나 상담직 등도 18%에 이르긴 하지만, 다섯 명 중 한 명은 경비나 청소직이었다. 주차 관리, 요양 보호사 등 서비스 직군도 이들의 주된 취업처였다. 프로그램 참여자 중 65%가 40대 후반 이상인 데다 학력도 고졸 이하가 72%인 탓도 있지만, 좀 더 질 좋은 일자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복잡이 프로그램을 통해 연결된 일자리의 급여 수준이 낮은 편인 것도 문제다. 세 명 중 두 명은 월급이 150만원 미만이다. 월 100만원 미만도 15%나 차지한다. 3인 가족의 최저생계비가 126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꼬박꼬박 빚을 갚으면서 생활하기엔 많은 편이 아니다. 만약 가족 중 한 사람이 아프거나, 사고라도 당해 목돈이 들어가게 되면 부채 상환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채무 재조정 프로그램에서 중도 탈락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전문가들은 이들에게 질 좋은 일자리를 알선하려면 직업교육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학중 캠코 종합기획부 팀장은 "빚을 안고 있는 사람 상당수가 제대로 된 직업교육을 받지 못하고 흔한 자격증도 없어 일자리 알선이 쉽지 않았다"면서 "이들을 각종 재취업 교육 프로그램과 연결하는 시도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신용불량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이들의 재활을 어렵게 만든다. 신용회복위원회 관계자는 "신용불량자라고 하면 예비 범죄자쯤으로 보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도 이들의 재활을 가로막고 있다"고 말했다.
英, 사회적 펀드 만들어 긴급한 생활비 무이자로 대출…美, 신용상담사협회가 채무자 대리해 빚 재조정 협상
조선일보 특별취재팀
[펑크 난 사회 안전망 - 빚에 갇힌 서민들] 선진국의 채무자 자활 지원책
선진국들은 빚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단발성이 아니라 단계적이고 꾸준한 지원을 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채무를 조정하는 프로그램도 단순한 탕감보다는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돕는다.
영국은 정부가 조성하는 사회적 펀드(Social Fund)가 채무자의 자활(自活)을 돕는 첨병 역할을 한다. 긴급한 생활비를 무이자로 대출해주는 것은 기본이다. 임산부라면 아이를 낳는 비용을 지원하고, 가족 중에 누군가 사망하면 장례비를 긴급 대출하는 식으로 세심한 배려를 한다. 채무자가 살아가면서 불가피하게 목돈에 들어갈 만한 상황에 마주쳤을 때 무너지지 않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영국 법원은 채무자가 파산을 신청했을 때 빚을 일부라도 갚도록 유도해 최대한 파산하지 않도록 이끌어준다. '묻지 마 탕감'보다 자력갱생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민간의 채무 조정 기능이 강력하다. 전미신용상담사협회(NF CC)는 채무자가 지고 있는 여러 종류의 부채를 통합해 채무자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재계약을 유도한 다음 채무자를 대리해 채권 금융회사와 채무 재조정 협상을 벌인다. 개인 채무자가 금융회사와 불리하게 싸우지 않도록 보호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저소득층과 소규모 기업에 대한 지원을 정책금융공사가 통합해 관리하기 때문에 효율적이다.
또 일본은 급전이 필요한 사람에게 연금을 담보로 생계비를 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