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박정희 대통령 서거 당시 신문기사들에 등장하는 신당동 가옥 묘사들1

천안한화빙그레 2014. 8. 16. 10:45

 

▲ 1979년 11월 21일자 경향신문

 

"곧 돌아오마"며 대문 나선지 18년

3유자녀가 돌아온 고 박정희 대통령 사저 신당 6동 62의 43호

 

   18년.

 

   뜰앞에 심어놓고 떠났던 손가락 만하던 산당화도 2m 높이의 큰 나무가 됐고 아이들 키 만하던 목련도 이제 어른 키의 3배나 넘게 자랐다. 

 

   붉은 기와지붕은 색이 좀 바랜 듯하지만 검은 철제 대문과 정원의 돌들은 그때나 이제나 변한 게 없다.

 

   서울 중구 신당6동 62의 43 고 박정희 대통령의 사저. 이 집에서 고인은 5년 7개월간 살며 5·16혁명을 주도했고 한나라의 최고 책임자가 되어 떠났지만 이제는 슬픈 귀거래사의 한토막이 돼버렸다.

 

   고 박대통령이 이 집으로 이사온 것은 지난 58년 5월. 육군 준장으로 전셋방을 전전하다 두번째로 장만한 「내 집」이었다.

   대지 99평, 건평 26평의 방 세개짜리 일본식 목조건물인 이 집은 처음 이사했을 당시는 낡고 반반한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것이었다.

 

   집값의 반 이상을 은행융자로 메웠지만 고 박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는 형편이 닿는대로 고치고 다듬어 돌 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가신 임들의 손길이 어렸다. 검은 지붕을 붉은 기와로 바꿨고 베란다를 꾸미기 위해 사냥개의 새끼를 팔기도 했으며 창고와 방 1개동을 증축하여 건평  39평으로 확장했다. 육여사는 여유만 생기면 꽃과 나무를 사 정원을 꾸몄다.

 

   이 집으로 이사온 지 7개월만에 영식 지만군을 낳았고 곧 소장으로 진급, 「좋은 집 터인 모양」이라고 가족들은 즐거워하기도 했다.

 

   지금도 박대통령이 아침 7시 군용 지프를 출근할 때면 육여사가 지만군을 안고 나와 배웅하던 모습이나 육여사가 근처 중앙시장으로 장보러 가던 모습들을 이 곳에 오면 오래 산 많은 주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동쪽을 향한 4평 크기의 방을 박대통령이 서재 겸 거실로 사용했고 남쪽으로 향한 방이 안방, 안방 뒤에 붙은 방을 어린 자매들이 사용했다.

 

   박대통령이 이 집을 떠난 것은 62년 10월 최고회의 의장에 취임한 후 장충동관사로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떠날 때 박대통령은 『곧 돌아온다.』며 대부분의 세간을 그대로 놓고 가 지금도 목제 장롱과 육여사가 사용하던 책상, 박대통령이 읽던 「이순신장군전」「세계전사」등의 책이 그대로 남아있다.

 

   박대통령이 떠난 후 이 집은 친정 어머니와 군시절부터 박대통령을 보필해 온 박환영(朴煥榮)씨(47)가 관리해왔다. 그 후 육여사의 친정 어머니는 75년 세상을 떠났다.

 

   관리인 박씨에 따르면 박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살면서도 한 달에 한 번쯤은 이 집에 찾아와 둘러보곤 했다는 것.

 

   박대통령은 집을 찾아오면 여기저기 둘러보며 『집을 함부로 고치지 말라.』고 당부하며 『정원의 나무나 돌을 옮기려면 먼저 내게 알리라.』고 지시할 정도로 이 집에 애착을 갖고 있었다고 박씨는 전한다.

 

   육여사가 서거한 직후 이 집에 찾아왔던 박대통령은 육여사가 사용하던 책상에 앉아 한참 생각에 잠겨 떠날 줄 모르더라고 관리인 박씨는 말한다.

 

   박대통령이 이 집을 찾을 때는 주로 밤이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언제  대통령이 찾아왔다 갔는지를 거의 모른다. 

 

   현재 이 집엔 가끔 파출부가 나와 청소 등을 맡고 있고 일년전부터 청와대에서 진도개를 데려와 집을 지키게 하고 있다. 

 

   박대통령과 육여사가 사용하던 방 등 본관은 걸어 잠근 채로 있으며 집 주위에 심어진 30여 그루의 사철나무, 목련, 진달래 등에는 푯말이 붙여져 엄격히 관리되고 있다. 

 

   관리인 박씨에 따르면 이 정원의 목련은 지난 63년 박대통령이 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해에 봄과 가을 2번 꽃을 피웠고 지난 7,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도 목련과 산당화가 봄, 가을 2차례나 꽃을 피워 주위사람을 기쁘게 했다는 것.

 

   또한 자연보호운동이 한창일 때는 산비둘기가 정원으로 날아와 정원수에 집을 지어주자 알을 낳고 새끼를 치기도 했다는 것.

 

   박대통령 서거 후 산당화가 또 다시 때 아닌 꽃을 피워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그 꽃도 뭔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모양』이라고 박씨는 씁쓸히 웃으며 집안 손질에 여념이 없다.

 

   박대통령의 가족이 옛집을 떠난 뒤 만 18년 3개월.

 

   큰 영애가 만 9세 때 장충동관사를 떠난 후 박근혜, 근영 두 영애와 영식 지만 생도 등 3자녀만이 옛집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동주(李東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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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11월 21일자 경향신문

 

고 박대통령 유가족 신당동 사저로 이사

새 집엔 경비초소 2곳 새로

큰 영애는 애견 스피츠 안고

내외 보도진 열띤 취재 경쟁

 

   고 박정희 대통령의 유자녀가 새로 이사한 서울 중구 신당6동 62의 43 박대통령의 사저 앞 골목길에는 이날 상오 19시 45분 큰 영애, 작은 영애, 남덕우, 서종철 청와대 특별 보좌관 등 일행이 사저에 도착하자 골목에 몰려있던 주민들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까만 투피스 차림의 큰 영애는 이날 담담한 표정으로 몰려든 주민들에게 눈인사를 나눈 후 작은 영애와 함께 집으로 들어와 거실에 마련된 박 대통령 빈소에 대한민국장을 올려놓고 분향했다.

 

   이날 큰 영애는 청와대에서 기르던 애견 스피츠(방울이)를 안고 왔으며 박대통령 내외가 청와대에서 기르던 진도개는 미리 이 집으로 들어왔다.

 

   새로 이사한 집안에는 2개의 경비초소가 새로 마련되었고 고 육영수 여사가 청와대로 이사하기 전에 심었다는 산당화와 목련 등 정원수가 말끔히 다듬어져 있었다.

 

   18년 동안 이 집을 관리해 온 박환영씨(47)는 "박 대통령 내외분이 모두 서거하고 쓸쓸히 돌아오는 자녀들을 보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며 "앞르로도 유족들의 뒷바라지를 계속하고 싶지만 속죄하는 심정으로 오늘 집을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날 상오 사저 주변에는 국내기자 30여 명, 미국 NBC 방송 등 외국 보도진 50여 명이 몰려 큰 영애가 청와대에서 옛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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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11월 21일자 동아일보

 

대지 98평, 건물 39평의 단층

육여사가 심은 정원수 무성   

 

신당동 집 

 

   신당동 고 박 대통령 자택은 대지 99평에 건평 39평의 단층 기와집. 이 사저는 박 대통령이 군 복무 당시인 지난 58년 5월 16일 충현동 집을 320만원에 팔아 450만원으로 사들여 입주, 최고회의의장 공관으로 이사하기까지 3년 6개월 동안 살았었다.

 

   육여사는 이 집을 사들인 뒤 앵두나무, 벽오동, 백목련, 향나무, 장미, 라일락 등 어린시절부터 좋아하던 품종의 화초와 나무를 심었으며 당시로서는 희귀했던 입식조리대를 부엌에 설치하는 등 주거에 편리한 시설을 하느라 배려했다.

 

   박 대통령 일가가 신당동 사저에 살 때 이웃에 살았으며 지금도 같은 곳에 살고 있는 박영배씨(60, 신당동 55의 53)는 "육여사가 라일락을 많이 심은 몇 년 뒤 봄철이면 그 향기가 이웃 멀리까지 풍겼다."면서 박대통령 유족들이 다시 이웃으로 오게 된 데 대해 깊은 감회에 젖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최고회의의장 공관으로 들어간 뒤에는 75년 12월까지 대통령의 장모가 관리인을 두고 살았으나 76년 장모가 별세한 이후는 청와대 관리담당 부이사관 박환영씨(47) 등 관리인들이 지켜왔다.

 

   대통령 유자녀들의 짐은 1주일 전부터 4,5차례에 걸쳐 옮겨왔고 새로 들 유자녀를 위해 벽지와 장판을 새로 바르는 등 집 수리를 모두 끝냈다. 향나무와 목련, 라일락 등의 나무 20여 그루가 심어진 마당은 깨끗이 청소돼 있었고, 이른 아침부터 청와대 경호실 직원 20여 명이 나와 마당 안쪽에 알루미늄 새시로 경비 초소를 짓는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 집은 방이 모두 5개이나 관리인과 가정부 방을 제외하고 그동안 옮겨온 짐을 놔둔 방 1개를 빼면 실제 사용할 수 이쓴 방은 2개 뿐.

 

   새 주인이든 신당동 집에는 1년 반 전 청와대에서 데려다 놓은 6년생 하얀털의 진도군이 취재기자 등 낯선 손님들을 보고 짖어대고 있었다.

 

   청와대 경호실은 대통령 자택 길 건너편의 옛 병원건물인 단층 건물(신당동 63의 86)을 1천만원에 전세냈는데 이곳에 경호실 직원 30명이 배치, 15명씩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며 대통령 유자녀 경호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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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1월 21일자 중앙일보

 

   5·l6 혁명의 산실(산실).

 

   고 박정희대통령의 사저(서울신당동62의43)가 18년 3개월만에 주인들을 맞았다.

 

   신당동 주택가 어귀에 소담스럽게 자리잡은 고박대통령 사저는 61년 8월 박대통령 가족이 장충동 최고회의의장 공관으로 이사한 뒤 18년 3개월 동안 비어 있다가 서거 이후 영식과 두 영애 등 유족을 맞이하기 위해 말끔히 단장을 끝냈다.

 

   주민들로부터 「역사의 집」으로 불려지고 있는 이 사저는 대지 99형에 건평 39평(지하 2.9평 포함)짜리 낡은 기와집.

 

   지난 18년 여 동안 박대통령의 군대 시절 부하였던 관리인 박환영씨(47 청와대 관리담당 부이사관)와 파출부 김옥분씨(52)가 그늘속에서 텅빈 집을 보살피며 이 집을 지켜왔다.

 

   건물 내부는 방6개와 욕조겸 화장실·주방·응접실·창고등으로 설계돼있고 출입문과 창문은 2중문.

 

   관리인 박씨는 지난달28, 29일 이틀동안 종로벽지상회 인부를 불러 방 4개를 도배하고 장판을 깔아 「니스」를 칠했다.

 

   유족 3남매의 방은 보통 벽지로 발랐으나 박대통령이 쓰던 방은 천으로된 고급벽지를 사용해 안온하게 꾸몄다.

 

   난방용「디젤·보일러」에 기름을 치고 시험 가동했고 집 뒤뜰 개집에 있는 「진도」(6년생 진도개)도 목욕시켜 놓았다.

 

   「진도」는 박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아는듯 귀를 쫑긋 세우고 허공을 쳐다보며 연방 짖기만 할 뿐 밥을 재대로 먹지 않는다고 박씨는 걱정했다.

 

   대문 맞은편 서쪽담밑에 자란 산당화(키1m)는 박대통령이 서거하기 3일 전부터 피기 시작해 15송이가 꽃망울을 터뜨리더니 장래식 이후에 시들었다. 이 산당화는 봄에만 피는데 올해엔 때아닌 늦가을에 피어 신기함을 더해주었다.

 

   박대통령이 이 집을 구입한 것은 제7사단장(소장)을 지낼 때인 58년 5월 16일.

 

   셋방살이로 전전할 때 영부인 육영수여사가 적은 봉급을 쪼개 적금을 부어 56년 4월 23일 처음으로 마련한 신당2동 401의7 집(대지 51평, 건평 30.5평)을 3백20만환에 팔아 여동생에게서 꾼 돈을 보태 4백50만환을 주고 사들였다.

 

   그래서 당시에는 육여사 명의였으나 8·15사건 후 박대통령의 명의로 바뀌었다.

 

   이 집으로 이사할 때만 해도 추녀와 마룻바닥이 무너져 내릴듯 하고 부엌바닥이 썩어내려 대폭적인 수리가 필요했다.

 

   육여사는 틈틈이 집안팎을 손질했다.

 

   63년 방2개를 증축, 건평을 26평에서 39평으로 늘린 것 외에는 별다른 수리가 없어 지붕(붉은기와)에서 비가 샐정도로 낡아 있다. 이사한지 1년만인 58년에 영식을 낳았으며 5·16혁명의 산실이 됐다.

 

   충북 옥천이 고향인 관리인 박씨는 박대통령이 52년 광주포병학교 교장 시절 일등병으로 전령을 맡은 뒤 줄곧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가 박대통령이 최고회의 의장이 되면서부터 사저 관리를 맡았다. 박씨는 그동안 틈틈이 공부해 단국대학을 졸업했고 지금은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는 만학도다.

<김원태기자>

 

 

 

      

출처 : 정부수반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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