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2002 한일월드컵 당시를 기억해 본다.

천안한화빙그레 2013. 9. 10. 11:04

2010남아공월드컵에 대한민국 국민들 속상한것 다 털어버리고 싶어진다.

정치는 국민의 마음속 이야기를 듣고 국민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속시원한 이 월드컵과

같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훗날 우리 박지성선수와 같은 분이 대통령이 되면 어떨까?

그라운드에서 말하지 않아도 서로 소통하는 노란완장의 주장처럼 큰형님처럼, 친구처럼, 리더처럼 그렇게

경기장 안에서 온국민에게 환희와 희망을 주는 그런 박지성선수가 훗날 대통령 나오면 한표 꾹찍어야겠다.

2002년 한일월드컵경기는 세계가 우리를 깊이 알게 되었던 중요한 이슈였다.

2000년 10월 일본 문부과학성초청 국비장학생으로 국비유학에 올랐다.

나름 스스로에게 자랑스럽고 기대가 컷다.

내 꿈을 실천하는 계기가 될 것이고 내 스스로 프라이드가 생길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막상 대한민국의 이동현은 그저 조그마한 나라, 돈없고 힘없는 나라, IMF의 도움을 받아 사는 그냥 그런 나라의 한 유학생이었다.

김영삼정부가 OECD 가입되었다고 선진국 진입했다고 샴페인을 터트리고 축배를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1998년 IMF 금융지원을 받게 되었다.

OECD가입하면서 우리 유학생들에겐 장학금 기회가 현저히 줄어 들었기도 하다.

아무튼 정말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했다. 밤낮이 없이 활동도 했다. 공부만 한다고 좋은 학자가 아님을 알기에

틈틈히 유학생회나 다른 기회로 일본 이곳 저곳도 다녔다.

아무튼 아무리 노력해도 국가가 위기속에 있다면 그 국가의 국민은 세계 어느곳에서도 무시당하고 멸시당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우리에겐 새로운 기회가 왔다.

2002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세계는 대한민국을 동방의 작은 국가가 아님을 기억해 주었다.

월드컵 4강신화속에 우리는 많은 일본인들과 국제 유학생들에게 Corea, Korea 최고라는 소릴 들었다.

그때의 추억으로 잠시 돌아가본다.

 

 

 우리에겐 희망이 있었다. 그저 변방의 작은 국가라는 이미지는 정치인도 기업인도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축구국가대표선수들과 히딩크 감독이 우리를 세상에 알려주었다.

큐슈대학교 한국관에서...

 유학생들 무슨 일있을때도 꿈쩍도 안하도 영사관에서 대형스크린을 설치해주었다.

 재혁이도, 재혁이친구 찬혁이도 태극기 그리고 나타났다.

 재욱이 잠오는데...

 엄마 뭐하러 왔어요...나 피곤한데...

 아이들 이날을 훗날 떠올릴거야...아마도.

 우리재욱이 가장 어린아이다보니 일본방송에 카메라에 잡히는 영광도...

 함께 유학을 온 교육부 사무관님~ 지금은 서기관이시구요...잘생긴사람 위주로 인터뷰...

 멋진 형아~ 지금 한국에 다시 들어와 군 마치고 다시 일본에서 유학생활하는 ...

 역시 젊음은 좋다. 대한민국 국기가 그려진 소고가 더 커보이는 것은...

 그래 목청껏 일본땅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는 거야~

 수경아, 현철아 멋진 청년으로 잘 지내고 있지?

 너희들 처럼 멋진 욱이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뭔지 모르지만 나도 좋다~

 근대 눈꺼풀이 풀리는 것은~아이구 피곤하다. 잠온다......

 드디어 신나게 뛰어놀던 재혁이도 잠이들고..

 그래도 우리의 응원은 일본 해변을 메아리친다.

 대한민국~짝짝짝~ 아싸 대한민국....

 나, 일본땅에 태극기 꼿았습니다. 이렇게 자랑스러울때가...이강오박사의 유학시절 행복해하는 모습....

 진영훈박사와 그옆에 이제는 동반자(부인)이 된 켈리도 보이네요

 아이구~ 눈꺼풀 내려간다. 좋았는데...엄마 지하철 언제도착하나용~

 대한민국 국민임이 너무 너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 때의 영광이 다시한번~

 유학시절 이렇게 대한민국인임이 자랑스러울때가 없었을겁니다.

히딩크감독, 홍명보, 황선홍, 유상철, 김태영, 안정환, 이영표, 박지성, 설기현, 차두리,

김남일, 송종국, 이천수, 이운재선수등 모두 모두 당신들이 대한민국의 최고의 애국자셨습니다.

다시 그 영광을 기억합니다.

출처 : 시골에서 희망찾기
글쓴이 : 박사농부이동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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