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5.16 쿠데타? , 혁명? 당신은 역사를 어디서 부터 봅니까?

천안한화빙그레 2013. 9. 17. 10:20

5.16을 두고 대한민국 각계가 서로 다른 평가를 내어 놓습니다.

어떤이는 민주주의를 짓밟은 군사독재의 시작일이라 평가하고

어떤이는 대한민국이 세계 일류 국가로 성장하게된 시작일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불과 40여년 전에 일어난 이 명백한 하나의 사건을 두고

왜이렇게 심하게 입장이 차이가 날까요?

7080 같은 격동의시대를 거쳤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세대차이 일까요?

순수한 기준적 시각에서 잘 잘못을 구별하는 시각차이일까요?

 

얼마전 역대 대통령에 관한  인기관련 여론조사가 있었습니다. ('더 좋은 민주주의 연구소' 에서 실시) 

전현직 대통령이 재출마 한다면 다시 뽑겠습니까? 하는 질문과 전현직 대통령들 중 가장 호감가는 사람을 1명 선택해 달라는 조사였죠.

첫번째 재출마에 관한 응답은 박정희 대통령이 57.5% 로 1위, 노무현 대통령이 47.4% 로 2위 김대중 대통령이 39.3% 3위 에 올랐습니다.

가장 호감가는 사람을 1명 선택해 달라는 응담에선 박정희 대통령이 31.9% 노무현 대통령이 30.3% 김대중 대통령이 19.8% 를 나타냈네요.

관련 기사보기 ↓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110512171235019&p=nocut

이 여론조사가 다른 여론조사들 처럼 절대적인 신뢰를 형성 할 수는 없겠지만 여러면에서 흥미로운 생각을 하게 합니다.

 

중복투표가 가능한 전현직 대통령의 출마여부에 관한 설문에서 50%를 넘는 유일한 사람은 박정희대통령이였습니다.

1명을 선택해 달라는 선호도 투표에선 근소한 차이로 노무현대통령을 제치고 박정희대통령이 1위를 기록했지요.

재출마에 관한 투표는 근시효과를 고려해볼때 (기준시점과 가까운 시점에 대해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

결과는 박정희의 완승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50%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그만큼 그들의 재임기간동안 업적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국정운영을 잘 못했다 라는 의미 입니다.)

유일하게 박정희만이 국정운영 부분에 있어서 국민들로 부터 합격점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러나 개별 선호 투표로 가면 또 얘기가 달라집니다.  박정희와 노무현의 표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죠.

국정운영에 있어서 합격점을 받지 못하더라도 박정희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독재와 억압이라는 박정희시대의 과오가 인정되는 부분이겠죠. (참고로 선호도 조사에서 4위는 이명박입니다 7.6%)

 

 

박정희를 평가하는 사회 주요 전문인사들의 말은 한결 같습니다.

국력 성장과 산업화에 큰 업적이 있다는 것과 독재로 인한 민주주의의 억압이 있었다 라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두 명제 (앞으로 간략하게 '경제성장'과 '독재'로 표시)를 해석하는 방식은 극단적으로 대비됩니다.

 

어떤사람은 박정희 시절의 경제성장을 혹평합니다. 높은 물가상승과 노동자들의 삶의 질 문제, 높은 지니계수와 엥겔지수  

재벌의 탄생과 그로인한 현재까지의 문제점 등등 각종 현상들을 통해 그것을 입증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이 겪고있는 경제적 병리현상은 바로 이러한 박정희 시절의 경제성장에서 부터 누적된 잘못의 결과라는 것이지요.

 

다른사람은 박정희 시절의 독재가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합니다. 물론 경제성장은 지금 대한민국이 있게된 동력이라고 말하고요.

서양에서 수백년 걸린 민주화가 우리 나라에선 단기간에 이룩될 수 있었던 이유가 이승만 시대의 교육확충과 박정희 시대의 중산층 확보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그 시대 정치경제적 상황을 고려한 내제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지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5.16 자체에 당시 민중들의 지지가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 5.16 군사 쿠데타 당시 박정희 대통령 >

 

양쪽다 일리 있는 설명을 합니다. 하지만 두 주장은 분명 충돌하는 부분이 있지요.

바로 역사를 어디서 부터 보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 역사의 경제성장과 민주화는 어느 시점부터 해석해야 할까요?

우리나라 국민들의 민주주의 의식은 언제부터 성장해온 것일까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는 조선후기 부터 시작됩니다. 상놈이란 말이 무색할만큼 상인들의 입지가 커지고

대규모 경작을 통한 자영농의 성장이 일면서 조선에도 부르주아지 즉, 자본가 계급이 형성됩니다. 이들은 형식적 계급인 양반을

공명첩과 족보판매를 통해 계급의식을 타파하는 형식적 시도때문에 서양에서 처럼 시민혁명 처럼 강력한 수단을 쓰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시민혁명적 성격의 운동이 전혀 없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동학농민운동이나 백정해방운동 같은 운동들이 있었지요.

 

민주화적 요구는 참정의 의미를 말하는 걸까요? 그보다 앞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 즉 누구나 평등하다 라는데 있어서의 요구입니다.

유럽의 참정권 확대는 오랜시간을 걸처 점진적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유럽이나 미국같은 나라들이 민주주의 국가로 불리는 이유는

이러한 점진적인 변화과정을 통해 그 인식과 정당성이 시민사회에 뿌리깊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실 지금도 대부분의 국가가 참정권의 제한을 원하고 있으며 (다만 그것을 공공연히 표시하지 않을 뿐이고) 실제적으로

참정권이 제한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투표행위가 사치일 뿐인 상황의 사람들도 있다는 뜻입니다. )

 

때문에 참정권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모든것을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민주주의란 이념은 국가가 통치함에 있어서

국민들이 얼마나 스스로를 그 통치로 부터 보호할 수 있느냐,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느냐 하는 부분의 전체적인 차원을 이해해야지

직접선거, 간접선거 같은 부분으로 결정되는 내용이 아닙니다. 

 

이러한 역사적 관점에서 볼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과연 급속도로 이루어 졌느냐 하는 부분은 결코 공감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조선후기 엘리트들 뿐만아리라 풀뿌리 민초에서 부터 우라나라는 자신에게 처해지는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싸워왔고

그 싸움은 서양의 시민혁명과 다를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동학농민운동의 전개와 광주 민주화 운동의 모습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부당함에 맞서 저항하는 그 모습 자체로 두 운동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같은 시민혁명입니다.  결코 땔래야 땔 수 없는 일관적인 역사적 흐름이지요.

 

< 동학 농민 운동 >

 

 

5.16이 민중적 지지를 받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중요한 내용이 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통치자를 뽑는 제도가 아니니까요.

어떤 통치가자 어떤 방식으로 선출되느냐는 분명 중요한 사항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출방식의 문제가 그 통치자의

선량한 통치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독재를 부르는 것도 아닙니다. 직접선거를 통해 뽑힌 통치자가 민주적인 통치를 할 것이라는

기대는 가질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러한 일이 일어나리라는 보장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란 뜻이지요.

대중들의 5.16 지지가 실제로 있었든 없었든,

설령 5.16을 지지했었고 그 이유가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해결을 갈망하는 것이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독재를 정당화 할 수는 없는겁니다.

때문에 어떠한 방식으로 집권했든 그 집권의 목적성과 당위성에 대한 내용보다 집권중 보여준 독재행위에 대한 평가는 냉혹한 것이고

그러한 평가가 다른 이유로 희석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부당함과 싸우는 시민혁명은 그 자체로 숭고한 의미가 있고, 역사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하는 것입니다.

 

< 부당한 집권에 대한 항의를 부당한 억압으로 묵살하려 했기 때문에 그것에 저항한 5.18 민주화 운동은 그 자체로 의의가 있다. >

 

이러한 역사의 기준적 시각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리고 그 기반을 통한 민주주의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박정희의 5.16의 의미는 매우 크게 달라집니다. 어느 시점, 어느 기준이 보다 타당할까요?

우리 역사의 보편성과 민주주의 의식은 그렇게 편협하지 않습니다. 어떤 계기로 급속도로 민주화된 짧은 역사가 결코 아닙니다.

5.16은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오랫동안 억누르고 거스른, 참혹하고 부당한  어느 역사의 시작일일 뿐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대통령의 업적을 평가하면서 그리워 합니다, 그리고 기꺼이 다시 뽑을 의향을 비춥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이유와 내용이 박정희대통령의 독재를 옹호하고 찬성한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박정희 추억의 이유는 힘있는 정책의 추진과 실질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과 개입을 그리워 하는 향수겠죠.

만약 이시대에 또 다시 박정희같은 사람이 집권하게 된다면, 그사람은 어떤 당리당략적 문제가 생기든 관여치 않고

국민들이 가장 열망하는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적극적인 정치를 희망하는 지도 모릅니다.

(적극적인 정치와 독재가 가분된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죠.)

 

저는 박정희 시대를 한살도 살아보지 않은 요즘말로 하면 신세대 입니다. (이미 사라진 용어겠지만요.)

하지만 그러한 정치가가 다시 등장한다면 기꺼이 반길것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수단에 있어서 억압적이고 폭력적이라면 바로 지지를 철회하겠지요.

현실적으로 명백한 부자와 가난한자의 이익의 재분배를 경제철학과 정치철학적 다툼을 핑계로 방관하지 않는,

대신 욕먹어 주는 정치인이라면 기꺼이 그를 지지할테지요.

하지만 이런식의 정치를 하기엔 우리사회가 매우 다원화 되어있고, 정치경제 철학적으로 열려있기 때문에

설령 박정희가 살아돌아온다고 해도 예전과 같은 통치를 할 수 있을꺼란 기대는 하기 어렵습니다.

 

좋은 통치자를 꿈꾸는 것은 문화적인 유전 (밈 Meme) 일까요? 직접 나서서 "우리의 사회를 이렇게 만들자!" 하는 식의 직접민주주의가

어떤 통치자로 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면, 직접민주주의의 밈은 어느만큼 유전되어 있을까요?

박정희 재선출 의견이 60%에 육박하는 것을 보며, 아직은 직접민주주의적 밈이 보편화 되지 않았음을 쉽게 느낍니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 운동, 시민혁명의 실체화인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문화유전자가 우리에게서 사라지진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다시, 적극적으로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갈구하는 시기가 다가옵니다.

다음 선거에서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될까요?

또 그 선택이 어떠한 통치자의 표상을 만들어 낼까요?

언제쯤 5.16을 두고 가치관적으로 다투는 일이 사라지게 될까요?

시간이 지나 이러한 격동의 한 파편이, 우리사회에 축적된 역량의 한 조각으로 남는 , 성숙된 사회 통합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어떤 날이 되었다고 해서 침튀기며 좋았네, 그렇지 않았네 하고 싸울일이 없게될 것 같습니다.

출처 : 어 떤 생 각 의 파 편
글쓴이 : 어떤생각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