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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언의 뉴스레이다] 조직적 역사왜곡, 박근혜는 분명한 입장 밝혀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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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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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특수부대 출신 탈북자로 구성된 자유북한군인연합의 증언에 따르면, 광주에 약 600명의 북한 특수부대가 침투했다. (그들이)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로 왔다는 악성루머를 퍼트려서 남남갈등을 조장하거나 사망자 수를 터무니없이 과장했다. 불과 4시간 만에 38개 무기고를 털었는데 이는 간첩이 미리 조사한 첩보를 바탕으로 북한 특수부대로 했기 때문에 가능하지 순진한 광주시민들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 ‘북한 타령’이다. 31년 전 전두환 일당이 민주시민을 참혹하게 죽인 5·18광주민중항쟁을 북한 특수부대가 저지른 만행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다. 이른바 국가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 한·미우호증진협의회 등 보수단체들이 5·18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반대하는 운동을 펴고 있다. 이들은 최근 영문으로 된 ‘반대 청원서’를 유네스코 본부에 보내는 등 조직적인 역사왜곡 운동을 벌이고 있다. 어쩌면 이들의 반대로 세계사에 우뚝 서 있는 피어린 민주화운동 기록이 묻혀버릴 지도 모르겠다. 현재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있는 팔만대장경 보다 훨씬 가치 있는 유산으로 후세의 세계인들에게 귀감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인지 모르겠다. 끝 갈 데를 모르는 일부 극우단체의 망발로 접어두기에는 너무 부끄럽다. 이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반응은 아직 없다. 유네스코 세계기록 등재 움직임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나 반대에 대한 언명도 없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기념일인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3년째 참석하지도 않았다. 제주도를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시키기 위해 대통령 부인까지 나서는 정부가 꿀 먹은 벙어리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심산일까. 아니면 이들 극우단체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이들의 행동을 은근히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북한을 압박하고 안보의식을 키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반기는 것은 아닐까.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박정희를 오마주한 이명박 정부에서 북한은 모든 악(惡)의 근원이다. 천안함 폭침사건도 북한의 소행이고, 농협 전산망 파괴도 북한의 소행이다. 국가 전산망을 혼란에 빠뜨렸던 ‘디도스 공격’도 물론 북한의 소행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 사건의 배후에는 북한이라는 ‘무자비한 집단’이 있다. 일부 언론에서 정부의 일방적 발표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북한 소행이라는 정부의 확신에는 한 치의 변화도 없다. 오히려 정부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면 ‘친북세력’이라며 색깔론을 들먹인다. 검찰은 의혹을 제기한 단체나 사람들을 전가의 보도인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는 등 으름장마저 놓는다.
최근 서울역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폭발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수사당국이 ‘북한 소행으로 몰아붙일 것’이라는 추측마저 나왔다. 경찰의 신속한 수사로 ‘주가조작을 위한 해프닝’이란 결론이 나와 다행스럽지만, 사건해결이 늦어져 미궁에 빠질 위기에 처했다면 또다시 ‘북한 소행론’이 불거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은 남한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서라면 어떤 악행도 서슴지 않는 도발집단’이라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주고 싶어 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나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도 배후에 북한이 있다고 했다면 경찰의 체면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미궁에 빠질 뻔 한 사건을 북한 소행이라고 발표하면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우선 북한의 만행을 만천하에 고발함으로써 국민의 안보의식을 높일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해이해진 안보의식을 굳건히 다짐으로써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다. 북한 소행이라는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면 ‘친북 세력’이라는 색깔론을 뒤집어 씌워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정적을 단칼에 무찌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그래도 승복하지 않으면 국가보안법 7조1항(찬양 고무죄)을 적용하여 감옥에 가둬 버리면 조용해질 것이다. 보수언론의 입장에서는 온갖 시나리오를 동원하여 공격하더라도 골치 아프게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당할 우려도 없다. 먼 훗날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아니면 말고’ 식으로 치지도외해버리면 그뿐이다.
이러한 수법을 가장 많이 악용한 세력은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집단이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은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이른바 ‘조직사건’으로 조작해 탄압했다. 특히 인혁당 재건사건이나 진보당 사건, 민족일보 사건 등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민주인사들을 빨갱이로 몰아 죽여 버리기도 했다. 재일교포 학생들이나 지식인, 피랍어부 등은 간첩혐의를 뒤집어쓰고 평생을 감옥에서 지내기도 했다. 물론 이들의 가족도 빨갱이 집단으로 몰려 신고의 세월을 살아야 했다.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그들의 무고한 혐의가 벗겨지고 국가보상이 이뤄지고 있지만, 국가가 저지른 폭력은 영원히 잊힐 리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박정희 향수’가 한국사회를 암울하게 뒤덮고 있다. 일부 보수언론은 5.16쿠데타 50돌을 맞아 박정희를 미화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쿠데타를 혁명으로, 독재를 민주주의의 시발로 왜곡하는 이들의 노력이 안쓰러워 보인다. 내년 대선에서 보수재집권을 위해 박정희 향수를 퍼뜨리려는 속셈이 훤히 드러난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유력하게 떠오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띄우기 위한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미리 줄서기 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가 뭐래도 박근해 전 대표는 ‘독재자의 딸’일 수밖에 없다. 아버지의 잘못을 참회하지 않는 한 그에게서 이러한 멍에가 벗겨지지는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못 본 체 하는 5.18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그가 적극 발 벗고 나선다면 국민은 박정희의 과오를 참회하는 것이라고 보아 줄 수도 있다. 진정 박근혜는 참회의 실마리를 보여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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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5/23 [06:08] 최종편집: ⓒ 대자보 | |